내가 모네Claude Monet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오르세 미술관에서였다. 직접 접하기 전에 너무 많은 매체, 지면으로 자주 보아와서 눈에 익어서일까. 강렬한 필치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조용히 숨어있던 그의 그림들은 기억에조차 뿌옇게 안개를 드리운 듯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었다. 지베르니Giverny를 방문하게 된 것은 그 유명한 모네의 수련이 탄생한 정원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확인하는 기분 정도였던 흐릿한 첫인상에도 불구하고 내내 마음에 걸렸던 그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취재를 준비하며 알게 된 모네의 인간적인 면모는 결국 나를 매료시켰고 그의 또 다른 작품, 색채의 정원을 탄생시킨 집요한 작가정신에 경탄했다. 색채의 정원인상파 화가의 정점이자 세계의 많은 미술 애호가들의 부러움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거의 일생을 보냈다. 초기 경제적인 이유와 그림 때문에 파리Paris, 아르장퇴유Argenteuil, 베테유Vetheuil, 푸아시Poissy 등 여러 지역을 전전하다가 지베르니에 정원이 달린 집을 빌려서 정착하고 그 후 모네는 1880년 후반, 드디어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고가에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면서 경제적인 안정을 얻게 된 그는 1890년11 월에 집과 과수원을 정식으로 구입하며 1891년 봄, 늘 꿈에 그리던 정원 가꾸기를 시작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모네가 “난 그림 그리는 일과 정원 가꾸는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정원 가꾸기와 그림 그리는 작업에 몰두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자료면면이 드러나있는 모네의 정원 사랑에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지베르니에 도착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시원스레 펼쳐진 평야와 낮게 드리워진 뭉게구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의 명성 때문일까. 모든 것이 그림의 한 장면 같다. 녹색 평원에 무리 지어 피어난 붉은 양귀비 꽃의 물결은 모네의 작품 <개양귀비1973> 처럼 아름답다. 파리 서쪽 80km떨어진 일 드 프랑스와 노르망디의 경계에 있는 작은 마을, 지베르니는 마을 앞으로 세느 강이 흐르고 강변을 따라 우거진 숲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고 있었다. 인상파 그림 속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프랑스의 전원풍경이 동양 이방인에겐 신이 내린 축복으로만 보인다. 유럽전역에 흩어져 있던 많은 화가들의 발길을 이끌었던 프랑스의 매력이 어쩌면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경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마을 어귀의 작은 로터리를 돌아 잘 정리된 정원과 함께하는 소박한 레스토랑을 두엇 지나고 드디어 모네의 집이 보였다. 매표소를 지나고 나니 정원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벌써 가득했다. 막 걸음을 뗀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이미 많은 관객들이 꽃을 관찰하기도 하고 모네에 관한 일화를 경청하기도 한다.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를 만끽함은 물론 그 즐거움을 넘어 어쩌면 신이 약속한 낙원의 땅 천국의 행복을 미리 엿본 듯 다들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모네의 정원에는 튤립, 키 작은 팬지에서부터 장미 양귀비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화려하다 못해 눈부시다. 녹색창틀에 담쟁이 넝쿨과 장미넝쿨로 뒤덮인 벽은 자연스런 전원의 멋을 한껏 자랑하는 듯하다. 녹색으로 칠한 나무 데크에 올라서 정원을 바라보면 꽃밭은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형형색색의 꽃길을 따라 미로를 돌다 보면 향기에 취해 시간을 잊은 사람들, 그 사이에서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는 사람들, 사람과 꽃이 하나가 되어 지상의 낙원이 마치 이곳인 듯 착각에 빠진다. 미로의 꽃길을 통과해 모퉁이를 지나면 유럽에서 보는 동양의 분위기와 묘한 감성을 자극하는 숲과 연못의 조화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그 당시 화가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던 목판화에 나오는 기모노나 일본식 정원이나 연못의 다리 등 일본의 문화를 동경하였던 그는 자신이 소장한 일본 목판화(모네의 정원과 함께 있는1897년에 지어진 2층 벽돌집에는 모네가 수집한 화려한 가구들과 일본식 목판화들이 있어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사랑받았던 동양문화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었다.)를 모델로 삼아 그의 정원을 조성했다.Claude Monet_Wassergarten in Giverny Claude Monet_Monets Garten bei Giverny 무지개다리가 놓인 일본식 연못에는 수련이 떠다니고, 연못 주위에는 아네모네, 아마꽃, 하이비스커스, 수국, 봉선화 등 서로 다른 꽃들이 피어났다. 정원을 둘러싸듯 등꽃나무의 보랏빛과 버드나무와 포플러가 우거지고 이렇게 모든 색채의 정원이 완성되었다. 모네는 지베르니의 자신이 만든 꿈의 정원을 그리면서 예술적 절정기에 오르고 자신의 낙원에서 실현시킨 예술적 판타지를 그림에서 표현함으로써 현실에 통합시키는 데 성공한다. 무엇보다 모네는 사유할 주제나 대상이 필요했으며 그 대상이 눈앞에 현실로 존재하도록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결국 자연을 가꾸는 작업에 몰두하게 했고 이것이 모네의 수련 연작, 정원 작품들의 시작이었다. 그 후 많은 예찬론자들을 통해 모네의 정원은 색채의 정원, 모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예술의 시작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모네는 지베르니의 정원이라는 주제에 몰두하였고 그 중 29년을 수련을 그리는데 바친다. 모네는 자연 속에서의 시간과 시간 차이를 포착하고 싶어했다. 동일한 풍경을 클로즈업하거나 확대하고 시간에 따라 변해 가는 풍경을 포착하려 애를 썼지만 자연은 포착될 수 없는 상태로 시시각각으로 변해가고 그것을 뒤쫓는 모네를 늘 강박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하나의 주제에 대한 250개의 변주는 예술의 또 다른 세계를 예고한다. 수련으로 가득한 연못, 자그마한 일본풍의 다리는 모네의 그림 속에서 우아함과 자유로운 붓터치로 살아나 이차원적인 공간의 깊이와 형상적 구조의 감각을 더하여 연못에서 유일한 공간적 요소를 이룬다.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수상정원의 변화를 그리는 예술가 모네는 이를 통해 예술의 절정기를 맞았다. 1914년 제1차 대전 이후 장남의 사망 이후 그는 수련 장식화에만 몰두하고 1922년 이 작품들을 국가에 기증한다. 8M에 이르는 대형작품을 포함한 수련연작 22점은 루브르 박물관 앞 튈르리 정원에 위치한 오랑주리 별관의 타원형 홀에 나누어 전시되었고 정신적으로나 지적으로 충만한 새로운 예술세계로의 진입을 위한 시도나 전통으로의 단절, 모네가 제시한 예술세계는 지금도 오랑주리에 남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일생을 그림에 몰두하며 구름이나 바람,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을 피카소가 평면에 입체를 구현한 것처럼 눈에 보이는 그대로, 시간성까지 담아내고자 한 모네. 1883년 지베르니에 정착하고 1926년 66세를 일기로 그가 숨을 거둔 이후로도 수십 년이 흘러서도 꽃피운 정원. 거꾸로 된 풍경 위를 고요히 떠있는 수련, 수면아래를 흐르는 물결. 그가 화폭에 담은 자연의 아름다운 찰나가 영원성을 지니듯이 그가 키우고 가꾼 정원은 색의 대명사이며 신의 만물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작품중의 하나, 만발한 꽃들로 가득해 변치 않는 생명력을 발하며 모두의 유산이 되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또 하나의 살아있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Claude Monet_Stillleben mit Anemonen